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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군인의 이야기: “그를 죽여.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널 죽일테다”

 INSP 05 December 2019

내전이 끝난지 6년이 지났지만 부룬디의 어린이 군인이었던 수많은 이들은 아직도 악몽같은 과거에 시달린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나를 응시했어요. 그리곤 살려달라고 애원했죠. 그리고 나서 난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았어요. 내가 죽인 첫 사람이 그였답니다. 나중에 대략 35명 정도 더 죽였지만 그 사람들은 AK-47로 죽여도 된다고 허락받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860 Words) - By Philipp Hed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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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_Army kids Kill him, or we will kill you

This is an edited version of the original.Please login to download high resolution Photo: Philipp Hedemann

이야기를 하는동안 실베르 다이쉬미에의 촛점없는 눈은 허공을 응시한다. 그가 복용하는 약물은 기억을 잊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과거로부터 그를 구해줄 만큼 강하지는 않다. 수천명의 소년 소녀들이 그랬듯이 이 22세의 청년도 후투족 반군과 투치족 정부군 간에 일어난 부룬디 내전에서 싸웠던 어린이 군인이었다. 이 내전에서 2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우리는 정부군 병사를 생포했어요. 남자 네 명이 그를 땅에 눌렀죠. 나에게 칼을 주면서 "이제 네 차례야!"하고 말했어요. 실베르는 그가 한 인간의 삶을 마감시키고 자신의 삶을 파괴해 버린 그날을 기억한다. "그는 35살 정도 되었고 난 16살이었어요. 난 "못하겠어요!'라고 말하자 우리편 사람들이 AK-47을 나한테 겨누고서 "그를 죽여.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널 죽일테다."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나는 그를 찔렀습니다."라고 실베르는 말한다.

그의 손에 묻은 피가 말랐을 때 즈음, 후투 반란단체인 국가 해방군(FNL)의 전투병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실베르의 영혼은 그가 방금 찔렀던 정부군 병사의 영혼과 함께 죽었고, 소년은 살인 병기가 되었다. "그 다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의 눈을 바라 볼 필요가 없었답니다. 내가 칼로 찔러 죽인 그 사람만 내 꿈에 자꾸 나타나요." 어린이 군인이었던 그의 이야기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 문 앞에도 못가본 그는 킬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는데13명의 중무장을 한 FNL 군사들이 그를 납치했다. 그날 그들은 더러운 칼로 소년의 왼쪽 팔에 코드를 오른쪽 팔에 정찰병이라는 그가 달게 될 군대 계급을 새겨 넣었다. 이 짙은 흉터들이 그 생애 최악의 이 년이라는 세월을 언제나 그에게 상기시켜 줄 것이다.

두 달 동안 실베르는 반란국을 위해서 총탄과 보급물을 나르고 언제나 정부군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으며 언제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부룬디의 어느 수풀 속에서 그의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다. 무술, 권총, AK-47, 수류탄, 유탄발사기, 그리고 그의 첫 살인은 기말고사였다.

"나는 우리 두목으로부터 늘 공짜로 마약을 얻었어요. 주로 탄자니아 산 대마초였죠. 밤에는 우린 마을로 내려가 약탈을 했는데 구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마구 피우고 마셨어요. 마약은 살인을 저지르는 데 대한 공포감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었죠." 낮고 느린 목소리로 젊은이는 말한다.

실베르가 무자비한 살인병기로 만든데에는 마약 이외에 정치적 세뇌도 한 몫을 했다. "그들은 우리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거라고 내게 말했죠. 우리가 권력을 잡기만 하면 집집마다 소 한마리와 염소 한마리를 갖게 될 거고 자유롭게 살게 될 거랬어요. 자꾸 듣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참말로 믿어지기 시작했어요." 실베르는 고백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순진함이 수치스럽다.

"아이들은 쉽게 조종 당할 수 있어요.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힘들때가 많지요. 인정 받기를 원하고 위험 계산을 할 줄은 몰라요. 죽은자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죽음의 비가역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답니다. 바로 그점 때문에 아동 군인들이 어른들보다 특히 더 잔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테오도라 니사브웨의 말이다. 그녀는 수도인 부줌부라 시에 위치한 부룬디 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유엔의 위임을 받아 어린이 군인들에 관해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바는 아니었다. "어린이 군인들은 일반 병사들보다 더 싸게 먹힙니다. 군대들이 종종 길거리의 아이들을 모집합니다. 아이들은 최전선에서 총알받이로 자주 이용되지요. 살아남은 아이들은 대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립니다. 그들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만들어 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공식적으로 어린이들을 군대로 강제로 징집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불법이지만, 전 세계 25만명으로 추산되는 아동들이 여전히 병사로 이용당하면서 학대받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프리카의 반란군에서 싸우고 있고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린이 군인 중 3명당 한명은 여자 아이라고 한다. 199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일어난 무장 충돌에서 2백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사망했고 6백만 정도가 불구가 되었으며 천만명의 아이들이 심각한 정신적 폐해를 겪고 있다고 유엔은 집계한다.

다른 분쟁지역의 어린이 군인들처럼 실베르 역시 마약과 이데올로기에 머리꼭대기까지 절어 있었다. 200명이 있는 그의 부대에는 다른 아이들이 일곱명 있었다. 실베르는 그 중 네 명이 죽는 것을 목격했고 그 자신도 거의 죽을 뻔 했다. 전투 도중 왼쪽 종아리에 AK-47 총탄을 맞고 적에게 사로잡혔다. 그가 반란군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불지 않자 한 군인이 실베르의 발에 칼을 박아넣었다. 끔찍한 고통에도 그 어린이 군인은 침묵을 지켰고 마침내 반란군들에 의해 풀려났다. 그러나 발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실베르는 여전히 절뚝거리고 앞이 막힌 신발을 신을 수 없다.

정부군에게서 풀려난 후 몇달 뒤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을대로 입은 이 소년 전투병은 더 이상의 살인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에 몰래 달아났다. "만약 들켰더라면 내 등 뒤에서 총을 쐈을겁니다. 하지만 계속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이 상한 청년이 털어놓는다. 그러나 왜 진작에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전투중이 아니면 실탄을 딱 두 발 밖에 지닐 수 없었어요. 도망가다 들킬 시, 총을 두번 쏘고 나면 여지 없이 죽게 되는 거죠." 실베르는 설명한다.

그가 납치된지 2년 만에 그의 고향 부루리로 갑작스럽게 돌아갔을때 그의 친부모들조차도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두려워 했다. "모두들 나를 무서워해요. 아무도 날 고용하려고 하지 않죠. 나랑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도 없어요. 전쟁기간 내내 단 한번도 강간을 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죠."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전직 어린이 군인이 피곤한 듯 나에게 말한다.

2011년 이후에 정치적인 이유로 자행되는 폭행과 살인이 또 다시 증가하고 있다. 9월에는 수도 부줌부라 근처의 한 술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투병들에 의해 35명이 살해되었다. 인권 단체들은 정부가 사법 테두리 밖에서 반대파 사람들과 반란군이었던 자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 나라가 다시 내전에 휘말릴 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어떻게 그럴수 있죠?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죽고 죽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전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어요. 뭐든 괜찮지만 또 다른 전쟁만은 안돼요."결코 다시는 무기를 만지지 않겠다고 맹세한 실베르의 말이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지도 6년이 넘었지만 실베르의 머리속에서 전쟁은 매일밤 계속 되고 있다.

Translated by Yana Lee Maqui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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